그러니까 약 2년 전인 2006년 3월 12일, 필자(한국해양연구원 정회수)는 낮선 이곳 한중해양과학공동연구센터 소장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중국 음식이나 문화에 전혀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갑자기 중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하였습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어디 아픈가?
중국 현지에 도착하여 직원 7명, 예산 7천만원 정도가 고작이라는 센터 내부 사정을 알고는 아차 싶었습니다. 그래도 한 기관인데 설마 했었습니다. 의욕 하나만으로 기울어가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한다는 의무감은 저를 다시 바쁜 일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도 분명치 않은 조직에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은 일에 치이던 불과 얼마 전 한국에서의 상황보다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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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곡절 끝에 센터는 1) 한중 해양과학공동위원회 비서처 역할, 2) 해양 정책정보의 생산-보급 기능, 3) 한중 공동연구 사업의 진흥 이라는 3대 지향점을 설정하였습니다. 조직의 힘을 결집-공격해야 할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1) 비서처 역할은 과거에 비해 300% 이상 활성화 되었습니다. 2) 정책정보 생산 보급기능은 홈페이지 구축 및 인포 익스프레스 발간 등을 통해 정착되었습니다. 그러나 3) 한중 공동연구 사업 진흥은 그 성과가 미흡합니다. 기획사업 참여 등 이제 겨우 공동연구 추진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한중센터가 10년, 20년간 장기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참여-수행할 수 있는 연구 사업을 아직도 발굴하지 못하였습니다. 단발적인 YSLME DB 구축사업, YEOS 사업 참여 등 몇몇 연구과제를 수행중이나, 너무 미흡합니다. 모두 소장인 저의 능력 부족 탓입니다. 결과적으로 목표의 2/3 즉 66% 밖에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부가적 성과는 괜찮았습니다. 첫 번째는 센터의 재정 안정이었습니다. 12년 나이의 센터 제정은 그동안 “표류”라는 단어로 표현되기에 적절했습니다. 연구사업에 포함되어 지급되는 센터 예산은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2008년 예산 부터는 새로운 형태 즉 국제공동연구사업의 틀 안에서 지원될 예정입니다. 두 번째 수확은 운영예산 규모가 매년 약 100%씩 증가한 점입니다. 운영예산이 많아진다고 해서 센터가 발전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증액된 운영 예산은 그동안 형편없었던 직원의 임금을 현실화시키고 이를 통해 직원 사기진작 및 우수인력 확보의 기틀을 마련하여 센터 중흥의 동력으로 활용됩니다.
종합적으로 저는 66점에 부수적인 성과 점수를 더해 80점 정도의 후한 점수를 받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80점의 B급 소장이었습니다. 저의 인생을 뒤돌아 볼 때 괜찮은 성적입니다.
이러한 작은 성과를 이룬 배경에는 센터 직원들의 초심으로 돌아간 노력, 해양부의 적극적 지원, 그리고 관련 기관장 및 직원들의 관심과 애정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남 잘되게 하는 것은 어려워도,
다리 거는 건 쉬운 것”이 현실인 마당에, 그래도 대부분의 주위 분들이 센터가 하는 일을 칭찬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 와중에서 센터에 대해 비판적이고 섭섭한 감정을 표현하신 분들에게는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하고, 또 앞으로는 너그럽게 봐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제 한중센터 소장직을 떠납니다. 후임 소장과 부소장께서는 90점의 A급 임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주마등처럼 흘러간 2년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개인적으로는 끝없는 글쓰기를 통해 한 뼘 넓어진 저 자신 생각의 틀이 가장 큰 수확이라 느낍니다. 좋지 않은 생활환경에서 씩씩하게 자라준 우리 아이들이 고맙고, 또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남편을 변함없이 섬기는 부인이 고맙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글쓴이: 정회수)